"온몸에 힘이 빠지고 활동의욕도 밥맛도 전혀없다.
큰 스트레스에 빠져있는 나를 읽는다."
크게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나또한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며칠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내가 내가 아니다.
어제는 추모제에 다녀왔다.
늦은시간 차가운 도로 바닥에서 내 무릎을 베게삼아 잠들어 버린 아들녀석 때문에
귀가하는 길은 퍽퍽했다.
어찌 이게 국지적으로 아들때문이겠는가.
부엉이 바위 위에서 힘껏 야비하게
노무현 대통령의 등을 떠민자들이 있었기에
치가 떨리고
울분에 휩싸인다.
용서하지 않으리라.
내 살아 남아서
남겨진 자로서
그들의 말로를 끝까지 지켜보리라...
-----------------------------------------------------------정치를 모르시던 분이 어느날 갑자기 정치현장에 발을 담그셨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할머니로 소개하시는 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현장에서 맞고 있는
그분의 심경을 짤막한 글에서 엿볼 수 있다.
...
경쟁
나는 이 단어를 '전쟁'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군 아니면 적군.
피비린내 나는 전쟁.
저들에게 선의의 "경쟁"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50여년의 저들의 역사에서 더 이상 선의의 "경쟁"이라는 단어는 찾아 볼 수 없다.
저들은 오늘도 산성을 쌓고 전쟁을 준비한다.
국민장?, 예우?
저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 적으로 간주하고 전쟁을 하려든다.
저들만의 성을 쌓고 갇혀 사는 불쌍한 자들.
핏값으로 쌓은 저들의 성벽 곧 무너진다.
벽돌 위에 벽돌 하나 남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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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2009/05/27 15:50
- 그녀의 방/그녀의 노트
경쟁,
오십평생 처음으로 죽음(자살)을 가슴으로 이해했다.
누구를 이기기 위해 살아오질 않았다.
그저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옳음인가를 분별하고
목숨 내놓듯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당연함으로 따라오는 것이기에
나의 발걸음은
누구의 평가보다
내 스스로의 평가가 가장 진실이었기에...
죽이고 싶도록 미운, 죽더라도 이겨야할 라이벌은 없었다.
상대평가보다 절대평가만 하며 살아버린 습관은 치열한 경쟁의 고통을 그리 크게 느끼지 못하였던 것일까
그런데 온 몸에 힘이 빠지고 활동의욕도 밥맛도 전혀 없다.
큰 스트레스에 갇혀있는 나를 읽는다.
‘평가하여 잘라내겠다. 언론노출빈도, 복종정도가 평가기준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좋은세상을 이루어가기 위해선 서로 격려하고 지원하여 통합하고 확장하여야 하건만 서로를 판단과 배격으로 찢어내는 그래서 부실과 축소로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무력으로 떨어져서는 않될 것인데... 우리는 왜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학생들이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을, 직장인이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을 공감한다.
경쟁, 내가 살기위해 너는 죽어야해. 너를 이겨야 내가 살수 있어 내가 살기위해 내 곁의 누구는 라이벌이 되고 적장이 되어 전쟁의 한가운데 적대적관계만 남고 이겨야한다는 극심한 부담감과 긴장감, 주변의 불신과 질투심은 날 수 있는 자유를 꺾고 벼랑끝, 죽음의 구석으로 내 몰고 있다.
나는 그 경쟁에 끼고 싶지도 않고 이미 벗어나 자유롭다고 되뇌지만 내 몸은 그 곳에 갇혀 있는 것이다.
무능력하다고 내동댕이쳐질 모습에 두려움과 수치심을 벌써 몸이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살인적 경쟁의 시대에 갇혀 왜 죽음을 살고 있는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 그 경쟁의 끝 벼랑에서 승복한 것인가
몸을 던진 마지막 투혼으로 승리한 것인가
죽음과 삶이 하나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조여 오는 고통에 있을까
부질없는 곳에서 떨어져 나와 자유로운 창공을 훨훨 날고 있을까
최선으로 살아온 삶이 부질없어져 버렸기에
상실감으로 비통했던 고통의 짐 벗어버리고
고통속에 갇혀있는 나약한 이들이 웃음으로 일어서 살아가기를 그리도 바랐던 것처럼
그도 편안히 잠들고 웃음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기를 부디 부디 기원한다.
2009.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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